영화 소개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 새드 엔딩 어른 동화

영보고 2022. 3. 7. 07:58

영화-혐오스런마츠코의일생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새드 엔딩 어른 동화

요즘은 거의 못 듣지만 옛날 어른들이 자주 하던 말이 있습니다. 기구하다. 팔자가 사납다란 말입니다. 주로 여성에게 쓰던 말인데 대상을 비하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말이 떠오르는 여성이 있습니다. 실존 인물은 아니고 영화 속 인물입니다.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여주인공 마츠코입니다. 영화 속 그녀의 일생은 정말 기구합니다. 기구하다 못해 애처롭고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영화 제목처럼 혐오스럽지는 않습니다. 영화를 보면 누구도 그녀에게 혐오스럽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상하게 꼬인 인생이지만 어떻게든 견디며 살아가려 했던 것이 그녀입니다. 그녀는 한 번도 남자를 배신한 적이 없습니다. 배신한 건 항상 남자였습니다. 배신 때마다 훌훌 털고 다시 일어섰던 마츠코입니다. 그래서 혐오스럽긴커녕 오히려 사랑스럽습니다. 

 

사랑스런 마츠코를 연기한 배우는 나카타니 미키입니다. 감독이 워낙 괴팍하고 말을 막하는 성격이라 촬영 중에는 마음고생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끝까지 참고 찍은 영화가 결국은 그녀의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제가 나카타니 미키를 인상 깊게 본 건 전차남이란 영화에서였습니다. 전차남에서 그녀는 여주인공 에르메스를 연기했습니다. 단아하고 품위 있는 부잣집 딸을 워낙 잘 소화해 분명 명문 집안 출신일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던 그녀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선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연기합니다. 일본에서 연기력을 인정받는 배우답게 이번엔 기구한 여인을 완벽하게 연기합니다. 전차남 이야기가 나온 김에  TMI 하자면 전차남 남주인공을 연기한 배우는 야마다 다카유키입니다. 그가 바로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화제가 된 일본 드라마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에서 AV 감독 무라니시를 연기한 배우입니다. 전차남에서의 찌질남과 살색의 감독 속 무라니시는 달라도 너무 다르지요? 극에서 극입니다. 배우란 직업이 이런 면에서 부럽습니다. 부잣집 딸이 되기도 하고 기구한 운명을 가진 여인도 돼보고 찌질남도 되고 활달한 AV 감독도 돼보니 말입니다. 항상 새로운 인물을 만나니 얼마나 즐거울까요? 아닐까요? 매번 새로운 인물을 연기한다는 건 오히려 스트레스일까요? 

 

영화의 시작

영화가 시작하면 경쾌한 노래와 함께 도쿄 번화가와 젊은이들이 보입니다. 그리고 쇼의 내레이션이 이어집니다.

 

" 꿈을 꾸는 건 자유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고

행복한 인생을 보내는 

사람들은 극소수

그러니까......"

 

내레이션과 함께 뮤직비디오 같은 인트로가 시작되고 타이틀 백이 끝나면 지저분한 자취방에서 늦잠을 자고 있는 쇼 옆에 그의 아버지가 앉아 있습니다. 놀라서 잠을 깬 쇼에게 아버지는 고모 마츠코의 유품을 정리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영화는 이렇게 마츠코의 죽음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시작합니다.

 

원작은 소설입니다. 감독은 지난번 제가 불량공주 모모코 포스팅에서 소개했던 나카시마 테츠야입니다. 불량공주 모모코를 만든 2년 후인 2006년에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입니다.

 

새드 엔딩 어른 동화

영화는 뮤지컬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디즈니 영화도 오마주 합니다. 내용은 슬픈데 형식은 즐겁습니다. 표현 방식도 가볍고 유머러스합니다. 그렇게 비극적 내용을 흥겨운 뮤지컬과 동화 속 이야기처럼 풀어냅니다. 그러나 해피 엔딩 어린이 동화가 아니고 새드 엔딩 어른 동화입니다. 잔혹 동화까지는 아니지만 슬픈 동화입니다. 스피디하고 화려한 영상은 관객에게 비극에 공감할 여유를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면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습니다. 그제서야 마츠코가 불쌍해집니다. 영화를 볼 때보다 보고 난 후가 더 슬픈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동정이 가면서도 분통이 터집니다. 그녀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작가 지망생 야마카와 데츠야와 야쿠자 류 요이치와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마츠코는 홀로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외로움을 견디지 못합니다. 폭력적인 남자라도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아빠의 사랑 없이 자란 마츠코가 사랑을 갈망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스스로 구렁텅이 속에 걸어 들어가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녀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영화라 그런 걸까요? 현실은 다를까요? 현실에선 마츠코 같은 여성은 없을까요? 여자들이 폭력적인 남자에게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랑일까요? 흔히 말하는 질긴 정일까요? 폭력에 길들여지는 걸까요? 아니면 두려워서 헤어지지 못하는 걸까요? 영화 속 마츠코를 보다 보면 너무 착하고 순진해 현실 같지 않습니다. 너무 바보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동정하면서도 그녀에게 화가 납니다. 

 

나카시마 테츠야 영화의 특징

나카시마 테츠야는 슬픈 신파 스토리를 그만의 스타일로 빚어냅니다.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답게 슬픈 이야기를 화려하고 리듬감 있게 풀어냅니다. 혐오스런 마츠코는 OST로도 유명합니다. 'What is life' 교도소 씬은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는 느낌입니다.  마츠코가 어릴 때 부르던 "구부렸다 몸을 쫙 펴서 별님을 잡아보자"라는 가사의 동요는 영화 속에서 반복되며 서글픈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TV를 통해 상황 설명을 하거나 극을 진행시키는 것도 나카시마 테츠야가 즐겨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다양한 상황에서 영화를 코믹하고 재밌게 풀어갑니다. 

 

대사의 반복도 테츠야가 좋아하는 서술 방식입니다. 대사를 반복하며 극적 효과를 노립니다. "그 순간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라는 마츠코의 대사는 위기의 순간마다 되뇌는 재밌고 슬픈 독백입니다. 나올 때마다 웃음이 나면서도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한국에서 흥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전국 관객 수 2만 2천 명 정도로 불량공주 모모코 기록  2만 명을 넘긴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데츠야의 영화는 한국 관객 기호에는 맞지 않는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2만 명이 보여주듯 마니아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팬덤이 있다고 대중적 요소가 없지는 않습니다. 마니아가 아니어도 한 번쯤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입니다. 의외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개성있는 영화입니다.

 

영화-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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