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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 3. 조폭 코미디의 원조

영보고 2022. 2. 15.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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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넘버 3

넘버 3. 조폭 코미디의 원조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 하면 쉬리가 떠오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함께 나온 영화는 또 있습니다. 1997년 송능한 감독의 작품 넘버 3입니다. 당시 한석규는 핫했습니다. 드라마에서 영화로 진출해 매년 흥행작을 만들어 내던 시절이었습니다. 닥터봉(1995), 은행나무 침대(1996) , 초록물고기(1997), 접속(1997), 8월의 크리스마스(1998), 쉬리(1999), 텔미 썸딩(1999). 95년부터 99년까지 매년 히트작을 만들어냈습니다. 대단하지요? 작품을 잘 골라서일까요? 연기를 잘해서일까요? 두 가지 다겠지만 여하간 90년대 후반은 한석규의 독무대였습니다. 80년대가 안성기의 시대였다면 90년대 중후반은 한석규의 시대였습니다. 5년 연속 히트작 배출은 아마 안성기도 이루지 못한 대기록일 겁니다.

 

그렇게 출연하는 작품마다 흥행하고 주목받던 시절 그렇지 못한 작품이 넘버 3였습니다. 하필이면 최고의 블록버스터 영화 페이스오프와 같은 시기에 개봉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페이스오프보다 일주일 앞서 개봉해서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는 점입니다. 페이스오프는 감독 주연 모두가 빵빵한 영화입니다. 감독은 홍콩 느와르의 대표주자 오우삼 감독이었고 주연은 당시 인기 절정을 달리던 배우 존 트라볼타니콜라스 케이지였습니다. 오우삼은 너무나도 유명한 영웅본색을 연출한 감독입니다. 존 트라볼타는 말할 것도 없고 니콜라스 케이지도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배우입니다. 지금처럼 망가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하던 때입니다. 넘버 3는 그렇게 최고의 흥행작을 만나 고전을 합니다. 하지만 서울 관객 30만 정도로 그나마 준수한 성적을 내고 퇴장합니다. 여기서 의외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의외의 반전

당시는 영화를 극장에서 내리면 비디오로 다시 출시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거기서 대박이 난 겁니다. 극장에서는 실패 아닌 실패를 했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비디오로 대박을 터트린 것이지요. 저도 넘버 3를 보려고 며칠을 기다린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는 어떤 고객인가가 얼마나 빨리 인기 비디오를 볼 수 있나를 결정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비디오 가게의 VVIP는 전화로 출시를 알려줍니다. VIP는 회수된 비디오를 숨겨놨다 내줍니다. 그나마 저는 VIP였는지 운이 좋았는지 며칠 만에 볼 수 있었습니다. 보통은 몇 번이고 비디오 가게를 가봐야 허탕만 치고 돌아오던 시절이 그때였습니다.

 

이렇게 넘버 3는 뒤늦게나마 대박을 터트리고 영화 속 많은 장면이 사람들로부터 회자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재밌고 인상적인 씬이 신인이었던 송강호가 만들어낸 장면입니다. 헝그리 정신무대뽀 정신으로 대표되는 씬은 이후에도 송강호 하면 항상 거론되는 그의 대표 씬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송강호가 있게 한 작품이 바로 넘버 3라고 할 수 있겠죠. 핵폭탄 검사로 출연한 최민식도 이 영화를 통해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지긴 마찬가집니다.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 한석규의 어리숙한 동향 친구로 나와 인기를 얻긴 했지만 영화배우로서는 자리를 못 잡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영화 중 넘버 3 만큼 좋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영화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 이미연, 방은희, 안석환, 박광정, 박상면, 지금 봐도 화려한 캐스팅입니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캐릭터는 모두 개성 넘치고 재밌습니다. 자신이 넘버 2라고 우기는 조폭 태주 한석규, 조폭보다 더 조폭 같은 검사 최민식, 태주 아내 역의 이미연, 도강파 두목 안석환, 삼류 시인 랭보 역의 박광정, 삼류 불사파 두목 송강호, 별명 재떨이 조폭 박상면, 강도식 아내이자 룸살롱 마담 방은희 등 각자 재밌고 개성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냅니다. 

 

조폭 두목 강두식이 회의에서 보여주는 무식하고 코믹한 장면은 이후 조폭 영화에서 반복되는 웃음 코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3류 시인 랭보와 태주 아내의 씬은 지식인의 위선과 우리 사회의 천박함을 코믹하게 풍자합니다. 영화 중간중간 사자성어 말장난도 재밌습니다. 다만 너무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으로 청불이라는 점이 아쉽습니다. 만일 청불이 아니었다면 극장에서도 대박을 터뜨렸을지 누가 압니까. 물론 그 장면들이 빠져서 이도 저도 아닌 영화가 됐을지도 모르지요.

 

조폭 코미디의 원조

넘버 3는 조폭 코미디의 원조입니다. 2000년대 조폭 코미디는 모두 넘버 3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넘버 3는 관객이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를 보여줬습니다. 이후 조폭 마누라, 두사부일체, 달마야 놀자 등의 조폭 코미디가 대박을 터트리고 시리즈물이 되면서 조폭 코미디 장르는 2000년대 한국 영화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국 영화는 한동안 조폭 세계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넘버 3를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진 2000년대 조폭 코미디물과 동급으로 취급하면 곤란합니다. 그저 재밌고 과하게 웃기는 것이 전부인 그런 영화라기보다는 한국 사회를 풍자하며 비판한 주제의식이 강한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급속하게 성장한 한국 사회의 모순과 천민자본주의의 천박성을 조폭 세계를 통해서 풍자하고 비판했습니다. 자만에 빠져 우쭐대던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이 점에서 넘버 3는 확실히 다른 조폭 코미디물과 궤를 달리하는 영화입니다.

 

영화가 개봉된 1997년 한국은 외환위기에 빠집니다. 치욕적으로 국가 재정 정책까지 간섭받으며 IMF에게 돈을 빌리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경제 성장에 걸맞은 모럴을 갖지 못한 한국 사회는 마침내 한보사태 등 내부 모순을 드러내고 스스로 붕괴했습니다. 영화 속 조폭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송능한 감독은 2년 뒤 세기말이란 또 한편의 영화를 선보이지만 흥행에 실패합니다. 그리고 홀연히 영화계를 떠납니다. 아쉽게도 단 두 편의 영화만 남기고 캐나다로 이민을 떠납니다. 당시는 캐나다나 뉴질랜드로 이민을 많이 가던 시절입니다.

 

언젠가 그의 딸이 미국에서 극작가로 활동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한가 봅니다. 딸도 극작가로 성공하길 기원합니다. 작품은 두 편뿐이지만 넘버 3 같은 걸출한 작품을 만든 아빠처럼 딸도 극작가로서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다만 아빠와는 달리 더 많은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고 오래도록 극작가로 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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