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개

종이 달. 가짜 달. 가짜 행복

영보고 2022. 1. 14. 11:45

영화-종이달
영화 종이달

종이 달. 가짜 달. 가짜 행복

 

얼마 전  국내 1위 임플란트 업체 오스템임플란란트에서 1880억 원 횡령 사건이 있었습니다. 범인을 체포해 지금 수사 중이지만 재무팀장 혼자서 그렇게 큰돈을 빼돌리는 게 가능한 일인지 믿기지 않습니다.

 

오늘은 이야기 나온 김에 횡령 사건을 다룬 영화 하나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오스템 사건처럼 거액은 아니지만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입니다.

 

제목은 종이 달입니다. 2014년에 만들어진 일본 영화입니다. 감독은 요시다 다이하치입니다. 원작은 은행 여직원의 횡령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쓴 소설입니다. 당시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라고 합니다.

 

10살 연하 애인을 둔 여자 행원이 90억이나 되는 돈을 횡령한 사건인데 일본에서는 이것 외에 유사한 사건이 두 건 더 있었습니다. 서로 별개의 사건이지만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건 범인이 여행원이고 횡령한 돈 대부분을 남자를 위해 쓰고 사주한 것이 남자였다는 점입니다.  정상적인 남자라면 사랑하는 여자에게 횡령을 지시 할 리가 없었겠지요. 더 슬픈 건 하나같이 버림받지 않으려고 남자의 요구를 들어줬다는 점입니다. 남자가 나쁘다고 해야 할지 여자가 어리석다고 해야 할지...... 여자든 남자든 상대를 잘 만나야 한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영화는 실제 사건과 조금 다릅니다. 현실에선 여행원이 미혼이지만 영화는 유부녀입니다. 영화는 부부관계가 소원해져 외로움을 느끼던 평범한 주부가 젊은 남자를 만나면서 외도를 하게 되는 설정이지만 실제로는 남친과 싸우고 택시에서 울던 여성을 위로해 준 택시 기사와 훗날 버스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 사귀었다는군요. 영화가 현실 같고 현실이 영화 같죠? 우리가 흔히 영화 스토리에 개연성이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현실이 영화처럼 그렇게 극적이고 개연성이 있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개연성이 없고 돌발적인 사건이 많은 것이 현실인지도 모릅니다. 

 

영화의 여주인공은 90년대 초 젊은 남성들의 우상, 일본의 가수 겸 배우 미야자와 리에입니다. 당시 그녀 인기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런 스타가 91년 누드집 산타페를 발간하자 일본 열도가 후끈 달아올랐지요. 누드집 하면 애로 배우나 삼류 배우들이 내는 것으로 인식되던 시절에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스타가 그것도 만 18세를 갓 넘긴 나이에 누드집을 내니 일본 남성들이 얼마나 열광했겠습니까? 당시 한국에서도 산타페  영향으로 누드집을 내는 여자 연예인이 제법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 출장때 거래처 남자 화장실 벽에 붙어 있던 미야자와 리에의 반나 사진이 기억나는군요. 니가타에 소재한 조그만 회사였는데 사장 아들이 리에의 열혈팬이어서 붙여놨다고 해서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나라라면 아무리 남자 화장실이고 사장 아들이라고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미야자와 리에는 종이 달 영화 출연 당시 이미 나이 40을 넘긴 중년 배우였습니다. 파혼이다 이혼이다 모진 세파를 겪은 이후라 내공이 쌓여 그런지 여주인공 리카 역을 잘 소화했습니다. 파트타임으로 은행 일을 보던 평범한 주부 리카가 남편과 소원해지고 평범한 일상에 지쳐가던 차에 대학생 코다를 만나서 변해가는 모습을 실감 나게 연기했습니다. 특히 코다와 여행에서 환락의 시간을 보낸 뒤 리카 홀로 소파에 앉아 상념에 젖어 있는 새벽 씬은 환락뒤 허탈하고 복잡한 그녀의 심경을 잘 그려냈습니다. 영화 초반 지하철역에서 코다의 유혹에 흔들리는 리카의 모습도 그녀의 연기 내공을 보여주는 명장면입니다. 미야자와 리에는 결국 이 영화로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합니다. 아역 모델로 시작해서 마침내 연기자로서 인정받게 된 것이지요. 

 

종이 달은 말 그대로 종이로 만든 달이니 가짜 달입니다. 아래 사진처럼 리카는 어슴푸레한 새벽하늘에서 달을 지웁니다. 가짜 달이지요. 리카가 코다와 함께하는 행복한 순간도 결국은 지워지는 가짜 행복입니다. 오래 지속할 수 없는 행복입니다. 영화는 평범한 인간이 돈과 욕망 앞에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지금까지 성실하게 살아온 것이 우리가 정직해서라기보단 유혹 앞에 놓인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우리도 유혹 앞에서 쉽게 무너질 수 있는 나약한 존재가 아닐까요?

아니라고요?

글쎄요.....

저는 자신 없습니다. 유혹에 저를 맡겼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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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종이달

 

마지막으로 잠깐 샛길, 리에가 받은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우리의 배우 심은경 5년 뒤 2020년에 수상합니다..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받은 상입니다. '수상한 그녀'가 정말 자랑스럽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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