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와일드 번치. 내일을 향해 쏴라

영보고 2021. 12. 27. 09:00

와일드번치-내일을향해쏴라
와일드 번치 / 내일을 향해 쏴라

와일드 번치. 내일을 향해 쏴라

두 영화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니면 들어 본 적이라도 있으신가요? 여성분 말고 남성중에 두 질문에 모두 No!라고 대답하신다면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분이 틀림없습니다. 왜냐면 두 영화는 나름대로 유명해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화팬 사이에 회자되거나 TV에서 방영되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두 영화는 서로 관계가 깊습니다. 첫 번째는 서부영화라는 점입니다. 게다가 둘 다 정통 서부극이 아닌 수정주의 서부 영화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실제 존재했던 무법자 강도 집단인 와일드번치와 관련이 있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두 영화 모두 1969년에 개봉했다는 점입니다. 

 

와일드번치라는 갱은 서부시대에 상당히 명성을 떨친 강도 집단입니다. 여성이나 어린이는 쏘지 않았다는 소문으로 의적 이란 평가도 있지만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요즘처럼 언론이 발달한 시대도 사실이 부풀려지고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판인데 당시야 오직 했겠습니까. 하여간 본론으로 돌아가면 갱 와일드번치와 상관없이 이름만 빌려와서 만든 영화가 와일드 번치입니다.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는 영어 제목(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에서 보여주듯 부치 캐시디(Butch Cassidy)와 선댄스 키드(Sundance Kid)가 실제 와일드 번치를 이끌던 리더급 인물이고 영화 내용도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두 영화는 1969년 같은 해에 공개됐는데 흥행 면에서 희비가 엇갈립니다. 내일을 향해 쏴라(이후는 내향쏴로 언급하겠음)는 그 해 최고의 흥행 성적을 올리며 와일드 번치보다 100배가 넘는 돈을 벌어들입니다. 와일드 번치 입장에서는 그 정도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내향쏴가 아카데미 각본상, 촬영상, 주제가상 그리고 음악상까지 받아버립니다. 물론 와일드 번치는 하나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비난에 시달리기까지 했습니다. 

 

영화 와일드 번치의 감독은 샘 페킨파 (Sam Peckinpah)입니다. 그리고 내향쏴 감독은 조지 로이 힐(George Roy Hill)입니다.  물론 둘 다 미국인이고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페킨파 할아버지는 판사 출신으로 목장을 가지고 있었고 힐의 아버지는 지역 언론사를 경영했다고 하니 둘 다 꽤 부잣집에서 자란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같은 시대 감독으로서 경쟁심이 있었는지는 알 길 없지만 둘의 흥행 대결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4년 뒤인 1973년, 힐은 스팅으로 페킨파는 관계의 종말이란 작품으로 다시 맞붙게 되지만 이번에도 페킨파가 패배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흥행 실적이 1차전보다 나아 100배 차이에서 20배 차이로 줄었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스팅은 그해 흥행 2위를 차지했고 관계의 종말은 흥행 20위를 기록했습니다. 스팅은 하필이면 공포영화의 레전드, 어린 여자애가 거꾸로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으로 유명한 엑소시스트를 만나 1위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다음 해 아카데미상을 일곱 개나 휩쓸면서 한 개를 수상한 엑소시스트에게 확실히 복수했지만 불쌍한 우리 페킨파, 관계의 종말은 이번에도 역시 한 개의 아카데미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더 슬픈 것은 페킨파는 힐에게 질투심을 느꼈을 법하지만 힐은 페킨파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세상에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상대는 날 라이벌로도 생각 않는데 나 혼자서 질투하고 라이벌 의식을 갖는 경우 말입니다. 서글프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기다립니다. 세월이 흐르며 페킨파의 영화 와일드 번치는 꾸준히 팬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자 평단의 평가도 점점 바뀌고 부정적 평가보다는 긍정적 평가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던 내향쏴는 오히려 사람들에게서 점점 잊혀갑니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 와일드 번치는 후대 영화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평가받고 마니아들로부터 칭송받고 있지만 내향쏴는 아카데미 수상작이고 그해 최고의 흥행작이라는 타이틀을 빼고는 후세에 이렇다 할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화 스타일로 보자면 와일드 번치가 터프가이라면 내향쏴는 부잣집 도련님 같은 영화입니다. 와일드 번치는 거칠고 내향쏴는 매끈합니다. 와일드 번치가 관객을 불편하게 하고 우울하게 한다면 내향쏴는 적재적소에 웃음 코드와 로맨스로 관객을 즐겁게 해 줍니다. 와일드 번치는 한물간 명배우 윌리엄 홀든이 주연을 맡고 내향쏴는 한창 핫한 배우 폴 뉴먼로버트 레드포드를 주연으로 기용했습니다. 내향쏴의 마지막 장면(아래 스틸 사진)이 특히 유명한데 이소룡의 영화 정무문(1972년작)에서도 마지막 장면으로 오마주 했을 정도입니다. 

 

샘 페킨파는 폭력 미학의 대부로 일컬어집니다. 와일드 번치 당시 폭력성으로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여러 대 카메라로 담은 총격씬은 이후 액션 영화의 바이블이 됩니다.  홍콩 감독 오우삼은 샘 페킨파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감독으로도 유명한데 영웅본색, 페이스 오프 같은 작품을 보면 페킨파 느낌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홍콩 느와르가 페킨파를 빼고는 말할 수 없을 만큼 홍콩 감독에게 많은 영향을 준 영화가 와일드 번치입니다. 이에 비해 내향쏴는 흠잡을 데 없이 잘 만든 영화지만 후대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습니다. 책으로 말하자면 베스트셀러는 됐지만 스테디셀러는 되지 못했고 시대를 앞서 가지도 못했습니다.

 

페킨파는 알코올 중독에 빠져 살다 60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힐은 스팅 이후에는 흥행작을 내지 못하고 말년에 예일대학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이 81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힐이 페킨파보다 20년이나 더 살았군요. 역시 일이 잘 풀리면 스트레스 받을 일도 적어 오래 사나 봅니다. 페킨파는 술을 너무 많이 마시긴 했습니다.

 

두 감독의 삶을 반추하다 보면 느껴지는 점이 많습니다. 한 사람은 당시에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지만 뒤에 좋은 평가와 사랑을 받게 되고 다른 한 사람은 누구도 부럽지 않은 영광과 칭송을 당대에 누리고 살았지만 후대에게는 잊히고 있습니다.  신은 절대로 한쪽으로 몰아주는 경우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를 주면 하나는 빼앗습니다. 둘 다 주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내일을쏴라-엔딩장면
내일을 향해 쏴라 엔딩 장면

 

※ 오늘 영화 중 주제곡이 유명한 영화 2편이 있습니다. 한때 많이 사랑받던 곡입니다. 

  • Rain Drops Keep Fallin' on MY Head   in 내일을 향해 쏴라
  • Knockin' On Heaven's Door   in 관계의 종말

 

와일드 번치의 또 다른 이야기 

https://youngbogo.tistory.com/4

 

와일드 번치 속 명장면

[와일드 번치] 속 명장면 영화사적으로 [와일드 번치]는 의미 있는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 폭력 미학 하면 항상 거론되는 영화입니다. 1969년 만들어진 샘 페킨파 감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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